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경 전투 (문단 편집) ==== 북상한 존 프렌치의 [[영국군|영국원정군]] ==== || [[파일:external/battleofgheluvelt.co.uk/French.jpg|width=300]][br]영국원정군 총사령관[br]'''존 프렌치'''[* [[보어전쟁]]에서 기병지휘관으로 명성을 쌓아 [[올리버 크롬웰]] 이후 최고의 기병대장이란 칭송마저 받았다.]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644128-1E54D9E200000578-286_306x442.jpg|width=240]][br]영국 전쟁장관[br]'''호레이쇼 키치너'''[* 영국의 식민전쟁의 명장으로 냉철한 장기적 안목덕에 연합군에서 '''"승리의 설계자"'''라는 별명을 얻는다.] || 그나마 다행이도 8월 4일에 독일의 벨기에 침공을 이유로 참전한 영국이 이제서야 헨리 윌슨등이 기획한 계획에 따라서 [[보어전쟁]]의 영웅 존 프렌치(John '''French''') 야전원수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영국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줄여서 BEF)을 파견보냈다. 이미 징병제를 도입해 열흘 좀 넘어서 한꺼번에 백만 명을 투입할 수 있는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모병제에 의존한 영국은 곧바로 각각 2개의 보병사단으로 구성된 2개의 군단과 1개의 기병사단만을 투입할 수 있었다. 이미 독일과의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져서 최소한 3년은 이어갈 것임을 간파한 영국 전쟁장관 호레이쇼 키치너(Horatio Kitchener)는 대규모 지원병을 모집하면서 숫적열세를 매꾸어갔지만 실제로 결실을 맺는 것은 1916년으로 1914년으로부터 오랜 시간 이후였다. 그러나 1914년의 영국 원정군은 영국이 "그간 투입한 전력중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훈련도 높고, 조직이 잘 되어 있으며, 장비마저 우월한"(incomparibly the best trained, the best organized, and the best equipped British Army ever put to war)만큼 적은 수에 비해 병사 개개인이 수많은 식민전쟁에서 쌓은 경험과 전투력은 무시못할만큼 뛰어났다. 8월 14일에 아미엥(Amien)에 도착한 프렌치의 영국원정군은 곧바로 제5군을 향해 진군했다. 20일에 벨기에 남부로 도착한 프렌치군은 제5군과 합세했으나 프랑스군과의 합류는 마냥 순탄치 않았다. French라는 성씨와 달리 존 프렌치는 프랑스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데다가 거만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에 켄트(Kent)의 귀족 출신으로서 초라한 피레네(Pyrenees)의 통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조프르가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렌치가 놀랍게도 프랑스 총사령부에게 소르뎃의 기병군단과 2개의 보병사단을 양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조프르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다. 제5군 사령관 랑레자크와의 회의도 마찬가지로 파탄났는데 존 프렌치가 랑레자크의 말을 두번이나 끊으면서까지 독일군이 왜 뫼즈(Meuse)까지 진군했는지와 거기서 또 뭘 할지에 대해서 묻자 신랄한 성격의 랑레자크는: >'''"거기에 뭘하러 왔냐고? 물고기나 잡으러 왔겠지!"'''[* 뫼즈는 프랑스 북동부 지역 이름인 동시에 그 곳을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즉 우리 식으로는 북한군이 남침해서 춘천까지 왔는데, 미군 장군이 "북한군이 춘천에는 왜 왔고, 뭘 할 것 같냐?"라고 묻자, 한국군 장군이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낚시하러 왔나보지!"라고 대답한 셈이다.] >"Pourqui sont-ils arrivés? Mais pour pêcher dans la rivière!" ...라고 답하며 프렌치를 도발했지만 프렌치가 프랑스어를 전혀 못한데다가 통역담당인 영국원정군의 부참모장 헨리 윌슨[* 랑자레크와는 전쟁 전부터 면식이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랑자레크는 "세계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영어는 세 단어로 충분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그 세 단어는 '미녀', '빨리 키스해 줘', '소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랑자레크가 프렌치에게 영어로 대답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이 '''"랑레자크에 의하면 강가를 건너려고 한답니다"'''(He says they're going to cross the river, sir)라고 번역하였기에 혈투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실 이런 프렌치의 거만한 태도는 프랑스군의 공격적인 전략에 아직 소수정예에 불과한 영국군을 순식간에 소모할 것을 염려한 키치너의 주의사항에 극대화된 감이 있다. 키치너는 프렌치에게 "자네의 지휘권은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동맹군 지휘관에게서 명령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your command is an entirely independent one, and that you will in no case come in any ssense under the orders of any Allied General)라는 명령과 "피해를 최소화하라"(towards a minimum of losses and wastage)라 명령했으며 프렌치는 키치너의 주의사항을 최대한 충실히 이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키치너의 명령과 별개로 프렌치의 변덕스럽고 공격적인 성격은 충분히 프랑스 총사령부의 공분을 샀으며 프렌치와 협력해야 하는 제5군 사령관 랑레자크도 만만찮게 신랄한 성격을 가진만큼 독일이란 공통된 적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지휘관은 협력 과정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